봉준호 감독 시리즈로 첫 장편 영화에서 감독을 봤던 플란다스의 개를 봤다. 나는 그저 옛날에 배두나가 나왔고 개를 소재로 한 흥행이 신통찮은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다가 첫 등장인물이 이성재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DVD 표지를 보고는 임창정인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외에 이제는 꽤 유명해진 고수희와 출연 시간은 훨씬 짧고 알아보기 어렵지만 김뢰하도 나온다.

내용은 별 볼일 없는 시간 강사 고윤주(이성재)가 벌인 개 납치 사건과 실종된 개를 찾는 아파트 관리실 경리 박현남(배두나)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 스포일러가 포함되려나? 하여간, 과연 조명이 있나 싶을 정도의 약한 조명과 그로 말미암은 독특한 색채감이 현실에 가깝지만 그래서 더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하에서 변경비(변희봉)가 뽀일러 김씨 이야기를 뜬금없이 늘어놓는 장면, 아파트 복도와 계단에서 윤주와 현남이 벌이는 추격, 그리고 그 뒤에 현남을 가로막는 장애물과 그 때문에 쓰러지는 현남, 최모씨(김뢰하)로부터 현남이 순자를 되찾아오기 위해 뛰어드는 순간 아파트 옥상에서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 등 만화적인 연출이 일품이다.

처음엔 개를 싫어하고 납치해 처리하던 윤주가 밤새 포스터를 붙이게 된 것이나 윤주를 구박하던 아내 배은실(김호정)이 사실 윤주의 뇌물로 쓸 돈을 퇴직금으로 마련하는 것(츤데레?), 그리고 마지막 윤주의 모습과 대비되는 그렇게 자기도 뉴스에 용감한 시민으로 나오고 싶어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현남이 친구 윤장미(고수희)와 등산을 하는 모습들. 봉준호 감독은 아이러니와 관계, 위치의 역전을 이야기하는가 싶다.

전체적으로는 윤주가 상황에 쫓겨간다면 현남은 상황을 쫓아간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윤주에게 눈이 더 갔는데(배두나라서는 아니고) 모델 출신인 그가 화장기 없이 여드름이 난 얼굴로 나오는 모습이나 담을 낑낑대며 넘다 털썩 떨어지는 모습이 영화 괴물에서의 모습과 자꾸 비교되어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후반부에서 윤주가 '나예요 나'라고 현남에게 고백할 때 현남이 몰랐을까? 나는 알고도 '우정'으로 넘어간 게 아닐까 싶다.

아주 훌륭한 수작은 아니지만,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면 볼만하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특이한 분위기와 연출이 특히 좋다.

Posted by 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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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엽우의 생각

    2009/06/23 22:15
    삭제
    플란다스의 개 - 2000년 영화니 오래됐다. 삐삐를 쓰거나 전철의 풍경 등이 그렇네. 구성이 꽉 짜여지 있지 않아 살짝 늘어지는 감이 좀 아쉽긴 하다. ((중간에 담배 생각이 한 번 날 정도?)) 내일은 살인의 추억 볼 차례군. ((아직도 이걸 못 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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